어제, 환상 속의 그대를 봤다.
중간중간 훌쩍거렸는데,
그 부분에서 갑자기 터져버렸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꺽꺽 거리며 터져나온 울음.
소처럼 눈물만 뚝뚝 흘릴 줄 알던 내가
흐느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울었다.
언젠가 너는 그랬지. 소리내 울어야 한다고.
"전 잘못한 게 없잖아요."
"그렇죠. 차경씨는 잘못한 게 없죠..."
눈앞이 흐려졌고 한참동안 노트북 화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울음은 멈추지 않고 파도처럼 거세제 몰려왔다.
기옥의 죄책감은 조에게 못나게 굴었던 나를 연상시켰고
차경의 억울함은 그럼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나를 떠오르게 했다.
혁근은, 너와, 내가 가져보지 못한 너의 사랑을 닮아 있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한 데 뭉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두, 나를 외롭게 만드는 어느날이었다.
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영 나를 사랑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게 나의 죄라면, 혼자인 건 형벌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니 형벌은 훨씬 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형벌.
혹은 스스로 그렇게 느끼며 평생을 고독과 외로움 속에 오들오들 떨게 되는 형벌.
이렇게 지독한 벌을 받을 만큼
나는 큰 잘못을 저지른 걸까.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날마다 한겨울 들판에 서 있는 걸까.
서럽고 억울하고 무거워서 한참을 꺽꺽 울었다.
그 순간에 선뜻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망설이다 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내가...'
너는 무슨 일이냐 물을 뿐, 내게로 올 수 없었다.
자꾸만 잊던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넌, 내게 내려진 형벌의 일부다.
희망과 좌절을 시시때때로 교차하게 하는 너란 벌.
영화를 보고 나니, 잠이 쏟아졌다.
꿈에서 너를 만났다. 꿈에서조차 너와의 만남은 지연되고 지연된다.
변하는 건 없다.
잠에서 깨어 그걸 깨달았다.
너를 다시 만나도 그건 변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나는 행복해지지 못할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못할 거야.
이 형벌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나도, 나를 사랑하며 사람답게 살고 싶어.
그러려면 우선 너를 보내야겠지. 그래야 해.
환상 속의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