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여행을 다녀온 후, 새삼 이 시를 찾아읽었다.
함양학회는 즐거웠지만 민망했고 설렜지만 절망스러웠다.
교수님은 "너의 타자는 너 자신 뿐"이라고 했지만
크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날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