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이 싫다.
이건 봄을 타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다.
덥고 끈적끈적한 습도는
내 무기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여름이 되면 나는 죽고 싶다.
혹은 계절이 끝날 때가지 자고 싶다.
여름이 온 이유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긴 하다.
너와의 오래되고 미묘한 감정 문제.
새로 시작한 일의 긴장감과 스트레스.
쓰기 싫지만 써야만 하는 논문.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 조의 트라우마.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계속되는 경제적인 궁핍함.
그러한 모든 것들이 나를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게 한다.
거기다 나를 죽고 싶게 만드는 여름이 왔으니
사태는 최악으로 가고 있다.
오늘 낮에는,
나를 이고 가듯 책상을 이고 걷는 꿈을 꿨고
일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꿈을 꿨다.
일어났을 때 온 몸이 땀으로 범벅돼 있었다.
무언가 좋지 않은 기류를 타고 있다.
그건 외부보다 내부의 문제이다.
모든 스트레스가 응집되어 있어서인지
나는 가장 힘들게 하는 핵심을 짚어낼 수가 없다.
그게 이유없는 무기력을 가중시키고 대상없는 짜증을 돋우고 있다.
대학원 강의 소논문을 썼어야 할 주말에
나는 침대 위를 뒹굴며 꿈속을 헤매고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정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늦은밤, 너에게 걸려온 전화가 짧게 울리고 끊어졌을 때도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고,
월요일 출근을 앞둔 피로한 시간을 이렇게 잠 못들며 보내고 있다.
트위터에 우울하기 짝이 없는 멘션이나 올리면서.
누군가 보아주기 원하지만
원하는 누군가는 결국 보지 않는 그 공간에.
여름 탓이라고, 모든 걸 작렬하는 태양에 미루기엔
나는 떳떳하지가 못하다.
그래도 여름 탓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뭐하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어쩌면 여름만 지나면 모든 것들이 단순 명료하게 해결되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든다.
그러나 여름은 이제 시작되었고
가을은 어디에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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