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방

안녕, 비포미드나잇

푸른새벽81 2013. 6. 2. 00:48

 

 

 

마음이 약해질까봐 예매한 버스표를 취소했다.

 

영화표는 취소할 수가 없어서

혼자 보거나 여자친구 데리고 가서 보라고 했다.

 

그 와중에 그런 말이나 하고 있는 나.

착한 여자 콤플렉스도 아니고.

 

새로운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한번,

첫사랑 얘기에 한번.

 

그 중 마음이 가장 상한 건 두 번째.

이 시리즈영화에 얽힌 첫사랑과의 추억을 너무 솔직하게 말해버린 탓이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추억이 너에게 있는데

넌 첫사랑타령하고 있는 걸 들으니

내가 왜 이 영화를 그렇게 보고 싶어 했었나 회의가 들었다.

 

또,

그렇게 아니라고 말하던 어린 여자애와 결국 만나고 있다는 얘기에

너란 남자는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했다.

 

더 실망스러운 건, 

너무 어려서 안돼, 만나고는 있는데 마음이 가지는 않아, 그 여자가 좋다고 해서 만나는 거야

따위의 비겁한 변명을 늘어놨던 거다.

 

이게 여자의 촉인지 알 수 없지만

지난번 어린 여자애 얘기를 처음 했을 때 네가 그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새로울 것 없는 소식이었을 텐데 막상 네 입으로 들으니(그것도 추궁에 결국 인정한 셈이지만)

뭔지 모를 서운함이 밀려와서, 대체 너는 왜 계속 내게 연락을 하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울고 싶다는 내 문자에 새벽같이 전화해서 왜 걱정시키냐며 따듯하게 말해놓곤,

결국 약속이나 취소하는 눈치없고 매너없는 녀석.

그 아침에 너 땜에 더 울고 싶었어.

 

만날 여자 다 만나면서 왜 나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

그렇다고 나를 만지지 못해 안달인 것도 아니면서.

그런 웃기는 핑계 말고 진짜 이유는 뭘까.

 

너의 문학적 허영을 채워주는 사람이라서? 그건 다른 과거의 여자도 있잖아.

그럼 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거야말로 정말 비참하다.

네 미안해, 소리 얼마나 듣기 싫은데!

 

'미안해. 화풀리면 연락해.'

 

화가 났다기보다

너와의 근본적인 문제를 이제는 정리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과 우정의 경계에 걸쳐있는 마음이

깨끗하게 한쪽으로 기울기 전까지 먼저 연락하지 않을 작정이다.

안 그럼 서운한 마음이 자꾸 더께져서 관계를 망칠 것 같다.

 

울고 싶을 때 전화하거나 문자할 사람이 없어져

혼자 훌쩍이는 날들이겠지만,

 

너 없이 지내는 게 새로울 것도 없다.

너는 늘 나를 혼자두었으니까.

 

내일 밤 피곤한 눈으로 고은시집을 펼쳐봐야 하나 싶었는데

종일 시집볼 시간이 생겼으니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꼭 극장에서 보리라 다짐했었는데,

결국 나는 자발적으로 이 영화를 포기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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