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일을 하고부터 저녁 6시는
내 삶의 기준점이 되어버렸다.
6시 퇴근과 함께 나는 공적인 영역의 문을 닫고
지극히 사적인 시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퇴근 이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여가시간은
업무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해서
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 시간을 방해받는 것은
사적인 공간에 누군가 침입한 것과 같이 불쾌하고 짜증스럽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땐 시도때도 없는 업무전화와 톡에도
내 시간을 도둑맞아가며 일일이 응대를 했었다. 밤이건 주말이건.
그러나 그런 희생은 오히려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할 뿐이다.
밤 12시 넘어 전화를 해 시덥잖은 질문을 하는 사람의 머릿속엔
도무지 타인이란 존재에 대한 배려는 없다.
그런 식의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는 일이 반복되고 나는 지쳐갔다.
기준을 세우고 여가시간을 사수하기 시작한 건 정말 지칠대로 지쳐서였다.
지금은 퇴근 후 업무연락을 무시하는 일에 비교적 스트레스가 적지만,
여전히 분별없는 사람들은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루다.
부재중 전화와 카톡을 무시하고 무심히 휴대폰 화면을 보다 짜증이 일었다.
이 시간에 내가 케어해야 할 소속도 아닌 사람의 질문까지 받아야 하나.
그 선생은 '너무 늦게 전화를 한 것 같다, 내일 전화하겠다' 는 톡을 보냈다.
짜증이 확!나서 졸업식이 몇 시냐고 묻는 교수님의 톡까지 못 본 척 덮었다.
더 굳게 다짐을 한다.
상대가 누구든 6시 이후엔 다 씹겠다!
내 사적인 시간에 이런 일로 짜증이 나는 것 자체가 짜증스럽다.
그런 에너지를 좀 더 나를 위해 쓰고 싶다.
전에 유진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내가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은
퇴근 이후에 연락이 와도 좋은 사람과 아닌 사람이다.
불행히도 그 기준 안에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외부에서 일을 보느라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
퇴근하면서 아 힘들다- 소리가 절로 나온 날이었는데
즐거운 일기가 되지 못해 유감이다.
퇴근 후엔 연락하지 말아요!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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