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방

꿈꾸는 사람

푸른새벽81 2015. 3. 18. 00:18

 

 

 

햇수로 14년.

 

오래된 메일들을 읽는다.

새삼스럽게도, 그 옛날부터 우리의 관계는 같은 형태로 반복되고 있었다.

 

여러 차례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은유적인 표현들로 마음을 드러내는 일을 회피하고

단호한 척하면서 여지를 남기고.

 

두 사람 다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였다.

그런 채로 참 끈질기게도 만났다.

 

사무실전화에 찍힌 부재중 번호를 확인하고 이건 뭔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내가 마음을 내보였을 땐 시큰둥하게 밀어내더니 뭐하자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 내 번호가 없구나, 지웠겠구나.

마음이 차가워졌다.

 

아무일도 없는 듯 안부를 묻는 문자가 왔을 땐 다시 같은 패턴의 시작이구나 했다.

그걸 받아드는 순간 나는 14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에 또 올라타는 것과 같았

 

어리석은 줄다리기는 하지 말자 다짐했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내가 정말 원하는 사람이 그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

매번 끝이 같을 거라는 걸 확연히 깨달은 후라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역시나 쉽게 포기하고 잘지내, 작별문자를 보내왔다.

딱 그 정도.

 

나는 어렵게 마음을 열고 시작하면

그는 언제나 딱 그 정도 마음으로 가볍게 찾아왔다.

 

이제야 믿고 싶었던 것들이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중이다.

 

열등생도 이런 열등생이 있을까.

그렇게 오랜시간을 반복하고 이제야 알아채다니.

 

그 세월을 내 인생에서 통째로 삭제해버릴 수 있다면, 혹은 그때 만난 사람이 그가 아니었다면,

소용없는 가정은 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 해야 하는 건 지나간 과오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오늘을 즐기고 새로운 내일에 대한 구상을 하는 것이다.

 

나는 좀 더 행복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과 하지 못한 일이 많다.

 

네가 아니라, 나를 향해 꿈꾸고 싶다.